[자치단체장 선거공약 평가] 44. 집값 폭락에 ‘재개발 딜레마’… 한 치 앞 못 내다본 공약 잔치
선진행정 정의도 없이 AI 민원처리 큰소리 ‘뻥뻥… 퍼주기·나눠먹기식 예산 집행은 공멸로 가는 지름길
민진규 대기자
2023-01-17
미국발 금리 인상으로 대출이자 부담이 가중되면서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주택 가격 상승을 이끌었던 20~30대 영끌족마저도 투자를 포기했을 정도다. 영끌족은 ‘영혼까지 끌어 모아 투자하는 MZ(밀레니얼+Z)세대’를 말한다.

6·1 지방선거에서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청장에 당선된 후보자 다수는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지역발전을 추진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급격하게 냉각됐기 때문에 부동산 개발 관련 공약을 정상적으로 추진하기 어려워졌다. 25개 자치구청장뿐 아니라 서울시장도 비슷한 처지에 내몰렸다.

지방행정을 연구하는 전문기관의 입장에서 25개 자치구청장이 제시한 공약의 문제점을 찾아 개선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남은 3년 동안 공약의 이행도를 높일 수 있는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판단했다. 6·1 지방선거에서 16개 광역자치단체 후보가 제시한 선거공약을 국가정보전략연구소(국정연)가 개발한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을 적용해 평가해 봤다. 

◇ 공약 충실도와 지역 경제사정은 무관

2018년 지방선거에서는 진보 정당 후보자가 서울시 25개 구청장 다수를 점유했지만 지난해 선거에선 보수 정당 후보자가 우위를 차지했다. 정치적 편향성이 두드러진 두 번의 선거 모두 당선자의 공약이 우수했다고 보기 어렵다. 지역 주민이 선거공약보다 정치성향에 따라 투표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당선된 25개 자치구청장의 선거공약을 분석해 보자.

우선 25개 자치구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구청은 구로구로 조사됐다. 구로구는 달성 가능성이 29점으로 가장 높은 점수를 획득했고 운영성은 21점으로 가장 낮았다. 달성 가능성은 4년 임기 내에 공약을 완료할 수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므로 가장 현실적인 공약을 많이 제시했다고 볼 수 있다.

반면에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운영성은 지역 공무원이 공약을 이행할 역량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평가하므로 실천 가능성이 낮은 공약도 다수 포함됐다는 의미다. G밸리 4차 산업형 청년취업사관학교 조성은 20~30대 청년 구직자에게 디지털 신기술 역량을 강화하는 교육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의 일환이지만 성공 가능성이 낮다.

다음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구는 관악구이며 측정 가능성과 운영성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측정 가능성 점수가 낮다는 것은 공약이 달성했는지 여부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공약에 포함된 활성화·운영·확대·강화 등이 대표적으로 모호한 단어다. △사회적 경제 활성화 △전통시장 활성화 △도시농업 활성화 △평생학습 활성화 추진 △청년 문화공간 확대 운영 등이 대표적인 공약이다.

관악구는 운영성에서도 낮은 점수를 획득했다. 관악S밸리 2.0 성공적 추진은 청년·서울대·기업 등과 손잡고 △창업 공간 운영 △관악구 벤처 창업 지원을 통한 지역 혁신 창출 △관악구·서울시·서울대 협력 대학 캠퍼스타운 운영 등으로 복잡해 공무원이 성공적으로 추진하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공약 충실도과 지역 경제사정과는 연관성이 낮았다. 서울시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인 강남구는 91점에 불과했지만 상대적으로 개발이 정체된 구로구는 125점으로 높았기 때문이다. 강남구와 인접한 서초구는 119점으로 강남구와 비교하면 28점이나 차이가 났다.

아파트 가격이 급상승해 노도강이라고 불리는 노원구·도봉구·강북구는 108~118점으로 큰 편차가 없었다. 이들 지역은 부촌으로 떠오른 마용성인 마포구·용산구·성동구의 104~106점보다 평균 점수가 높았다. 마용성이나 노도강 지역의 평가 점수가 높지 않다는 것은 정치 바람이 당선에 더 영향을 미쳤다는 의미다.


▲ 서울특별시 25개 자치구 종합평가,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 모델의 평가 결과[출처 = iNIS]


◇ 현 구청장 임기 내 공약 달성도 42% 불과

25개 자치구청장의 선거공약을 국정연이 개발한 갑옷(ARMOR), 즉 달성 가능성(Achievable)·적절성(Relevant)·측정 가능성(Measurable)·운영성(Operational)·합리성(Rational) 지표를 적용해 도출한 주요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25개 자치구의 평균 점수는 105점으로 250점 만점에 달성률은 42.0%로 낮았다. 이제 임기를 겨우 6개월 정도 보냈고 3년 이상이 남았지만 공약 절반 이상을 달성할 가능성이 없다는 의미다. 평균 점수보다 낮은 구는 강동구·송파구·강남구 등 9개 구에 달한다. 서초구를 제외한 강남4구로 불리는 강동구·송파구·강남구의 평가 결과도 저조했다.

반면에 평균 점수를 넘은 구는 서초구·구로구·강서구·은평구·노원구 등 15개 구이지만 대부분 평균 점수에 근접한 점수를 획득했다. 강서구는 구청장에 대한 사법절차가 진행 중이라 임기를 채울 가능성이 낮아 공약이 제대로 이행될 가능성은 없지만 공약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둘째, 5가지 평가 지표 중 평균 점수가 높은 것은 적절성으로 가장 높은 점수가 50점 만점에 26점으로 평균 점수를 겨우 넘었다. 26점을 획득한 구는 은평구·도봉구·중랑구·동대문구·성동구 등 9개 구밖에 되지 않는다. 동작구가 16점으로 가장 낮았다.

동작구의 문화 공약 중 e스포츠(LOL) 세계대회장 유치도 동작구에 e스포츠를 육성할 인프라를 충분하게 갖추지 못해 적절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서울 상암동에 있는 OGN e스타디움조차도 435억 원의 세금을 투입했지만 올해 초 아프리카TV에 운영권을 넘겼을 정도다. 부산광역시·대전광역시·광주광역시는 이미 e스포츠 상설 경기장을 운영 중이라는 점도 감안했다. OGN은 CJ EMM 게임 채널이다.

셋째, 5가지 평가 지표 중 평균 점수가 가장 낮은 것은 운영성으로 평균 점수가 50점 만점에 17점에 불과했다. 노원구가 22점으로 가장 높은 반면에 관악구·양천구가 13점으로 가장 저조했다. 운영성 점수가 낮다는 것은 공무원이 공약을 추진할 역량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양천구의 누구나 쉽게 창업할 수 있도록 하는 원스톱 창업지원 서비스 제공은 예비창업자를 위한 △창업 상담·컨설팅 △창업실습·교육 △점포 창업 △판로 확대 지원 등을 추진하는 것인데 행정지원만으로 성공하기 어렵다. 양천구가 창업과 관련된 유사한 사업에서 성공한 사례가 적은 것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넷째, 측정 가능성도 지역 주민의 정치적 무관심을 악용하는 공약인지를 평가하는 항목인데 평균 점수는 50점 만점에 20점에 불과했다. 운영성 다음으로 점수가 낮았다. 측정 가능성이 가장 낮은 점수는 12점으로 가장 높은 26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광진구의 공약 중 정보통신기술(ICT)·빅데이터 등 스마트 기술을 기반한 선진행정 구현은 선진행정에 대한 정의도 모호하고 활용하겠다는 기술도 구체적이지 않아 성과를 측정하기 어렵다. 중구도 빅데이터·인공지능(AI) 민원처리 시스템을 통한 선진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지역 주민이 민원 해결에 관심이 많다는 점을 파악해 측정이 어려운 모호한 공약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조류에 편승한 공약이다. 행정의 디지털화는 불가피하지만 구체적으로 구현 방안을 찾아야만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섯째, 합리성도 50점 만점에 21점으로 낙제점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나라도 고령화·저출산·저성장 등으로 경제의 활력이 떨어져 예산을 충분하게 확보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해졌다. 따라서 한정된 예산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할지 고민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의미다.

강남구가 14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강남구의 주택가격이 급등해 부동산 보유세가 늘어났지만 세금을 인하하거나 토지 거래 허가제를 폐지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미래 세대를 위한 투자 재원을 포기하는 것이므로 합리적이지 못하다. 강남의 성장 잠재력이 퇴보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달성 가능성은 50점 만점에 22점으로 매우 미흡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구로구가 29점으로 가장 높았고 중구가 16점으로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구로구청장은 외국인 주민의 구정참여 기회 확대, 구로사랑상품권 확대 발행과 같은 달성이 용이하면서 지역 실정에 적합한 공약을 다수 제시했다.

중구의 공약 중 세운 재개발로 경쟁력 있는 도시 조성은 부도심이 주거지로 발전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운상가를 주거단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은 어렵다고 평가했다. 특히 세운상가 재개발은 20년 이상 정체돼 있고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도 거품이 꺼져가고 있기 때문이다.

종합적으로 서울시 25개 자치구청장이 6·1 지방선거에서 제시한 공약 10개 중 6개는 임기 내에 완료하기 어렵다고 판단된다. 연말만 되면 멀쩡한 보도 블럭을 교체하고 도로 포장을 다시 하는 행정으로 지역을 발전시키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퍼주기나 나눠먹기식 예산 집행은 모두 공멸하는 지름길이다. 

⋇오곡(五穀)밸리혁신(5G Valley Innovation)-선거공약=국가정보전략연구소가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선거공약을 평가하기 위해 국내외 전문가들과 협력해 개발한 모델이다. 5G는 오곡(五穀·다섯 가지 곡식), 밸리(Valley)는 계곡을 의미한다. 문명은 ‘오곡백과’가 풍성한 계곡에서 탄생해 발전했기 때문에 국가·지자체가 번성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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